Saturday, June 11, 2011

제2편 하나님의 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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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본성

 

2:0.1 사람이 가질 있는 가장 높은 하나님 개념이, 원초적이고 무한한 인격에 대한 인간의 관념과 이상{理想} 포함돼있는 , 신격 성품을 구성하는 신성한 본성의 어떤 특질을 연구하도록 용인될 것이고, 유익할지도 모른다. 하나님 본성은, 네바돈 미가엘 제시한 다양한 교훈에서, 그리고 육신을 입은 훌륭한 필사자 생애에서 보여줬던, 아버지 대한 계시를 통해서 가장 이해될 있다. 또한 사람이 자신을 하나님 자녀로 여기고, 낙원 창조주 참된 영적 아버지 경외한다면, 신의 본성을 이해할  있다.
2:0.2 하나님 본성은 최상의 관념이 계시된 데서 연구될 있고, 신성한 성품은 숭고한 이상{理想} 묘사한 것으로 그려질 있지만, 신성한 본성에 대한 모든 계시 중에서 가장 계몽적이고 영적으로 교화시키는 것은, 나사렛 예수 자신의 신성{神性} 온전히 인식하게 되기 전과 후에 보여준 종교적 삶을 납득하는 데서 발견될 있다. 미가엘 육신화{肉身化} 생애를, 하나님 사람에게 주시는 계시의 근간으로 채택한다면, 우리는 신의 본성에 관한 어떤 관념과 이상{理想} 인간 언어 상징 속에 집어넣으려고 시도할 있고, 관념과 이상은, 만유의 아버지 인격 본성과 성품에 관한 인간 개념을 확실하게 조명하고 통합하는 기여할지도 모른다.
2:0.3 인간의 하나님 개념을 확장시키고 영성화{靈性化} 시키려고 모든 노력을 기울일 , 우리는 필사 정신이 갖는 수용력의 한계 때문에 엄청나게 방해 받는다. 또한 우리는, 신성한 가치를 묘사하고, 유한세계, 사람의 필사 정신에게 영적 의미를 제시하려고 애쓸 , 설명하고 비교할 목적으로 활용할 있는 언어가 제한되고 재료가 부족함으로 인해, 우리의 임무 이행에 심각한 방해를 받는다. 만유의 아버지께서 증여하신 조율사 필사 정신에 내주하고, 창조주 아들 진리의 충만하게 임하는 사건이 없다면, 하나님 대한 인간 개념을 확장시키려는 우리의 모든 노력은 아무 쓸모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 개념의 확장을 도와주기 위해,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신성한 {} 현존에 의존하면서, 하나님 본성을 사람의 정신 속에 더욱 묘사하도록 시도하라는, 나에게 주어진 명령을 이행하기에 기꺼이 임한다.
 
 
1. 하나님의 무한성
 
2:1.1 무한자 접하지만, 우리는 그를 발견할 없다. 신의 발자취는 알려지지 않는다.” “그의 예지력은 무한하고, 그의 위대함은 헤아릴 없다.아버지 현존에서 나오는 빛은, 비천한 피조물에게 아버지 “짙은 어둠 속에 거하시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눈부신 빛이다. 그의 생각과 계획을 헤아릴 없을 뿐만 아니라, “그는 위대하고 기적 같은 일을 수없이 많이 행하신다.” “하나님 위대하시며; 우리는 그를 납득하지 못하고, 나이가 얼마인지 도리가 없다.” “하나님 과연 땅에 거하시겠는가? 보라, 하늘과( 우주와) 온갖 하늘도( 온갖 우주도) 그를 담을 없다.” “그의 판단은 얼마나 헤아리기 어렵고, 지나간 행적은 얼마나 찾아내기 어려운지!
2:1.2 하나님 오직 분이신데, 무한한 아버지시고, 또한 신실한 창조주시다.” “신성한 창조주 또한 우주 감독자, 혼들의 근원인 동시에 운명이시다. 그는 최상급 이시요, 근본 정신이자 모든 창조계의 무제한 이시다.” “위대한 통제관 실수가 없으시다. 그는 엄위함과 영광으로 찬란하다.” “창조주 하나님께는 두려움과 미움이 전혀 없다. 그는 불멸하고, 영원하고, 스스로_존재하고, 신성하, 풍성하시다.” “만유의 숭고한 조상, 얼마나 순수하고 아름다우며 얼마나 심오하고 헤아릴 없는 분이신가!” “무한자 자신을 사람에게 나눠주신다는 점에서 가장 뛰어나시다. 그는 시작이요 끝이며, {}하고 완전한 모든 목적의 아버지시다.” “하나님 함께 하면 무엇이든지 가능하며; 영원한 창조주 원인들의 원인이시다.
 
2:1.3 아버지 영원하고 보편적인 인격이 무한히 엄청나게 현시{顯示}함에도, 아버지 자신의 무한성과 영원성 양쪽을 제한없이 스스로_의식하며; 마찬가지로 자신의 완전성과 능력을 충분히 아신다. 신성한 협조자들을 제외하면, 아버지 우주에서 완전하고 적절하고 완벽하게 자아를 평가하는 유일한 존재다.
2:1.4 아버지, 총우주의 다양한 구역에서, 아버지 자신에 대한 다른 요구가 때때로 바뀜에 따라, 그런 부족함을 끊임없이 확실하게 충족시킨다. 위대한 하나님, 자신을 알고 이해하며; 자신의 모든 완전한 근본 속성을 무한히 자아_의식하신다. 하나님 시공우주에서 우연히 생긴 존재가 아니며; 우주를 실험하는 이도 아니다. 우주 주권자들은 모험에 가담할 있으며; 성좌 아버지들은 실험할 있으며; 체계 우두머리들은 실습할 있으나; 만유의 아버지, 시작할 끝을 내다보시고, 그의 신성한 계획과 영원한 목적은, 그의 방대한 영토에 속한 전체 우주의  세계체계와 성좌에 속한 모든 권속의 모든 실험과 모험을 실제로 포용하고 납득하신다.
2:1.5 하나님께는 새로운 것이 없고, 어떤 시공우주 사건이든지 놀라운 것이 못되며; 하나님 영원성 궤도에 거하신다. 그에게는 시대의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 하나님께는 과거현재 또는 미래가 없으며; 모든 시간은 어떤 주어진 순간에든지 현재다. 그는 위대하고 유일하신 자존자{自存者}시다.
 
2:1.6 만유의 아버지의 모든 속성은 절대로 아무 제한 없이 무한하시며; 바로 사실이, 자체로, 유한한 물질 존재 기타 저급하게 창조된 지성체들과 직접 친히 교통할 없도록, 자신을 자동으로 차단시킨다.
2:1.7 그리고 모든 것은 첫째로, 하나님 낙원 아들들의 인격 속에 규정돼, 여러 계층의 피조물과 접촉하고 의사소통하기 위한 어떤 조치를 필요로 하는데, 그는 신성에서 완전함에도 불구하고, 또한 행성 인종들의 바로 살과 피의 본성에 종종 참여하여, 너희 가운데 하나가 되고 너희와 하나 되며; 그리하여, 말하자면, 하나님 미가엘 증여에서 나타났듯이 사람이 되는데, 미가엘 하나님의 아들 사람의 아들 바꿔 불릴 있었다. 둘째로, 무한한 인격체들이 있는데, 그들은 저급한 기원을 갖는 물질 존재에게 접근하고, 아주 다양한 방법으로 그들을 돌보고, 또한 그들에게 봉사하는, 스랍 무리 기타 천상의 다양한 지성체 계층이다. 그리고 셋째로, 유란시아 인간 같은 그런 존재에 내주하도록 보냄 받은, 예고 없이 그리고 설명 없이 보냄 받은 위대한 하나님 자신의 실제 선물인, 비인격 신비 관찰자, 사고 조율사들이 있다. 그들은, 하나님_의식{意識} 있는 능력을 지니거나 그것을 위한 잠재력을 지니는, 그런 필사자의 비천한 정신에 끝없이 풍부하게 은혜를 베풀고 내주하기 위하여, 영광스런 높은 곳에서 내려온다.
2:1.8 낙원 아버지, 이런 방법과 기타 여러 방법, 너희에게 알려지지 않고 제한된 이해력을 훨씬 넘어서는 방법을 통하여 사랑으로 기꺼이 낮추시며, 피조 자녀의 유한한 정신 가까이로 다가갈 있게 하시려고, 자신의 무한성을 다른 방법으로 변경시키고 희석시키고 약화시키신다. 그리하여 무한한 아버지, 점차적으로 절대적인 일련의 인격 분배를 통하여, 광범한 우주의 많은 영역에 속한 다양한 지성체와 긴밀한 접촉을 누리실 있다.
2:1.9 그는, 자신이 무한하고 영원하며 근원이시라는 사실과 실체를 조금도 손상시킴 없이, 모든 것을 행해왔고 지금도 행하, 또한 영원토록 계속 행하실 것이다. 이것을 납득하기가 어렵기는 해도, 신비 속에 둘러싸여있어도, 또는 유란시아 거주하는 그런 피조물들이 충분히 이해할 가능성이 없음에도, 이런 일은 절대로 진실이다.
2:1.10 최초 아버지 계획이 무한하고 그의 목적이 영원하기 때문에, 어떤 유한한 존재든지, 신성한 계획과 목적을 충분히 파악하거나 납득하기는 선천적으로 불가능하다. 필사적 사람은, 우주 진보라는 연속되는 피조물 상승 계획 수준들에서 결실과정과 관련하여 아버지 목적이 드러날 , 오직 가끔씩 그리고 여기저기서 그것을 얼핏 있을 뿐이다. 사람이 무한성의 의미를 납득할 없더라도, 무한하신 아버지 어떤 우주에 있는 어떤 자녀든지, 전체 한계성을 가장 분명하고 충분하게 납득하고, 사랑스럽게 감싸신다.
2:1.11 아버지 신성과 영원성을 수많은 높은 낙원 존재와 공유하지만, 아버지 무한성과 그에 따른 우주의 탁월성을, 낙원 삼위일체 속한 협조 동역자들을 제외하고, 어느 누구든지 충분하게 공유하는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의문을 갖는다. 인격의 무한성은 반드시, 필연적으로, 전체 유한 인격을 포함하며; 따라서 그분 안에서 우리가 살고 움직이고 우리의 존재를 누린다”고 선언하는 가르침은 진리다--글자 그대로 진리다. 필사적 사람에게 내주하는 만유의 아버지 순수한 신격 단편은, 위대한 1 근원 중심, 아버지들의 아버지 무한성의 일부이다.
 
 
2. 아버지의 영원한 완전성
 
2:2.1 너희의 선지자들도, 만유의 아버지 영원한, 시작이_없고 끝도_없는, 순환 본성을 이해했다. 하나님 온갖 우주에 글자 그대로 그리고 영원히 현존하신다. 그는 자신의 모든 절대적 위엄과 영원한 위대성을 갖고 지금 순간에 거하신다. 아버지 본성적으로 생명을 지니시며, 생명은 영원한 생명이다.” 영원한 시대들 내내 “모든 생명을 주신” 분은 아버지시다. {} 완전무결하심 속에 무한한 완전성이 있다. “나는 {}이며; 변하지 않는다.” 온갖 우주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그가 빛들의 아버지이심 뿐만 아니라, 행성 직무에 대한 그의 활동에서 “어떤 변덕스러움도 없고 변하는 그림자도 없으심” 또한 드러낸다. 그는 “시작 지점에서 끝을 선포하신다.” 그분이 말씀하신다: “내가 아들 안에서 의도했던 영원한 목적에 따라” “내 방침이 지속될 것이며; 내가 기뻐하는 모든 것을 행할 것이다.” 그래서 1 근원 중심 계획과 목적은 그분 자신처럼: 영원하고 완전하며, 언제까지나 변함이 없다.
2:2.2 아버지 명령은 최종적으로 완결되고 완전하게 충만된다. 하나님 무엇을 하시든지, 그것은 영원할 것이며; 어떤 것도 거기에 더하거나 줄일 없다.만유의 아버지 자신의 원래 지혜와 완전한 목적을 후회하지 않으신다. 그의 계획은 확고하고, 그의 방침은 변경되지 않으며, 동시에 그의 행위는 신성하고 오류가 없다. “그의 앞에서는 년이 지나간 어제 같고 밤의 순간 같다.” 신성의 완전함과 영원성의 장엄함은, 필사적 사람의 제한된 정신으로 충분히 파악할 있는 범위를 영구히 초월한다.
 
2:2.3 영원한 목적을 이행하실 , 변함없는 하나님 반응은, 피조된 지성체의 변화하는 사고방식과 바뀌는 정신에 따라서 변하는 것처럼 보일 있는데; 다시 말해서, 그것들은 외견상 그리고 표면적으로 바뀔 있더라도; 표면 아래 그리고 밖으로 나타나는 모든 현시{顯示} 밑에는, 영원한 하나님 변함없는 목적, 영구적인 계획이 여전히 있다.
2:2.4 바깥 우주들에서는, 완전성은 부득이 상대적 용어가 수밖에 없으나, 중앙우주에서, 그리고 특히 낙원에서는, 완전성이 희석되지 않으며; 어떤 국면{局面}에서는 절대적이기까지 하다. 삼위일체 현시는 신성한 완전성을 다양하게 펼쳐 보이지만, 그것을 약화시키지는 않는다.
 
2:2.5 하나님 근본 완전성은, 그가 의로우시다고 가정함에서 생기지 않고, 오히려 그의 신성한 본성이 선천적으로 완전히 선하심에 있다. 그는 최종적이고 완비되고 완전하시다. 그의 의로운 성품의 아름다움과 완전성에는 부족함이 전혀 없다. 그리고 공간 세계에 살아있는 실재에 대한 전체 기획은, 낙원에서 아버지 완전성을 함께 체험하는 고귀한 운명에 이르기까지, 의지를 지닌 모든 피조물을 상승시키는 신성한 목적에 중심을 둔다. 하나님 자기_중심적이지 않고 자기_충족적이지도 않으며; 광대한 온갖 우주의 자아_의식이 있는 모든 피조물에게 자신을 증여하기를 결코 멈추지 않는다.
2:2.6 하나님 영원히 무한하게 완전하신데, 몸소 체험함으로써 불완전성을 개인적으로 아실 수는 없어도, 진화 우주에 속한 모든 투쟁하는 피조물의 불완전함을 모든 낙원 창조주 아들들이 겪은, 전체 체험에 대한 의식{意識} 공유하신다. 완전하신 하나님 개인적이고 해방시키는 손길은, 도덕적으로 분별하는 우주 수준으로 올라간 모든 필사 피조물의 본성을 둘러싸고 마음을 감싼다. 만유의 아버지 이런 식으로, 그리고 신성한 현존의 접촉을 통하여, 우주의 모든 도덕적 존재의 진화하는 생애{生涯}에서, 미숙함과 불완전함 체험하는 데 실제로 참여하신다.
2:2.7 인간의 제한조건, 잠재적 {} 신성한 본성의 일부분이 아니지만, 필사자가 체험함, 그리고 사람과 악의 모든 관계는, 시간세계에서 자녀-- 낙원에서 나오는 모든 창조주 아들 창조했거나 진화시킨 도덕적 책임을 지닌 피조물-- 안에서 항상_확장하는하나님 자아_실현의 일부분임이 아주 확실하다.
 
 
3. 응보와 정의
 
2:3.1 하나님 의로우시며; 따라서 공정하시다. 자신의 모든 방식에서 의로우십니다.” “‘내가 행한 모든 중에 원인 없이 것이 없다’고 께서 말씀하신다.” “ 심판은 참되고 아주 의로우시다.만유의 아버지 응보{應報, 공의 公義} 피조물의 행위와 업적에 영향 받을 없는데, “우리 하나님이신 께는 어떤 죄악도 없으며, 그분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선물을 받지도 않으시기 때문이다.
 
2:3.2 그런 하나님 현명한 자연 법칙과 올바른 영적 명령을 시행함으로 말미암는 정확한 결말을 우리가 피해보려고, 그의 불변하는 법령을 변경하려고 그분께 철없이 간청하는 것은 얼마나 무익한 일인가! “속지 말라; 하나님 조롱당하지 않으시는데, 사람이 뿌린 것은 무엇이든지 그대로 거둘 것이기 때문이다.” 정말로, 범죄의 열매를 거둬들인다는 응보의 경우에도, 신의 응보는 항상 자비로 완화된다. 무한한 지혜는, 주어진 어떤 환경에서든지 측정될 응보와 자비의 비율을 결정하는 영원한 중재자다. 하나님 정부{政府} 대항하는 범죄와, 고의적 반역에 대한 가장 형벌은, (실제로는 불가피한 결말인데) 정부에서 개별 백성으로서의 실존을 잃는 것이다. 진심에서 나온 죄의 최종 결과는 소멸이다. 결국, 죄와_동일시되는 그런 개인은, 자신이 죄악을 받아들여서 전적으로 비실체가 됨으로써 스스로를 파괴해왔다. 그렇지만 그런 피조물의 실제 소멸은, 우주에서 통용되는 응보의 규정된 관례가 충분히 충족될 때까지 연기된다.
2:3.3 실존의 중지{中止}, 일반적으로 영역이나 영역들의 섭리시대, 또는 시기의 판결이 있을 공표된다. 유란시아 같은 세계에서는 행성의 섭리시대 끝에 온다. 실존의 중지는, 행성 협의회로부터 창조주 아들 법정을 거쳐서 태고 항존자들의 심판 법정에 이르는, 사법권을 갖는 모든 재판소의 협조된 조처에 따라서 그런 시기에 공표될 있다. 사멸{死滅}하라는 명령은, 범죄자가 거주하는 구체에서 시작되는 고소에 이의를 제기할 없을 만큼 확인한 후에, 연방우주 상급법원에서 이뤄지며; 그다음에, 소멸 판결이 위에서 확인되고 나면, 집행은 연방우주 본부에 거주하고 거기서 활동하는 재판관들의 직접 행위에 따라서 이뤄진다.
2:3.4 판결이 최종 확인되면, 죄와_동일시된 존재는 즉시 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된다. 그런 운명은 부활{復活}되지 않으며; 운명은 영구적이고 영원하다. 살아있는 정체성 에너지 요소들은, 시간이 바뀌고 공간이 변질됨에 따라서, 그것들이 언젠가 출현했던 시공우주 잠재성 속으로 분해된다. 사악한 존재의 인격에 관하여 말하자면, 그것은 영원한 생명을 보증했을 수도 있는 선택과 최종 결정을 이룩하기에 피조물이 실패함으로써, 영속하는 생명 수여통로{授與通路} 빼앗긴다. 연합된 정신이 계속 죄를 품어서 마침내 죄악과 완전히 자아_일치되면, 그다음에 생명이 중지되고 나서, 시공우주에서 분해됨에 따라, 그런 격리된 인격은 창조의 대령{大靈} 흡수되는데, 지존하신 진화하는 체험의 일부가 된다. 그것은 결코 다시 어떤 인격체로서 나타나지 않으며; 정체성은 마치 전혀 생겨나지 않았던 것처럼 된다. 조율사_내주했던 인격체의 경우에, 체험적 {} 가치는 영속하는 조율사 실체 속에서 살아남는다.
 
2:3.5 실체의 여러 실제 수준 사이에 어떤 우주 논쟁이 생기든지, 높은 수준의 인격체가 낮은 수준의 인격체를 궁극적으로 이기게 것이다. 우주 갈등의 필연적 결과는, 의지를 지닌 어떤 피조물이든지, 그의 실체성 또는 실제성의 정도와 고귀한 신성이 같아진다는 사실에 내재돼있다. 희석되지 않은 , 완성된 실책, 고의적인 , 그리고 완화되지 않은 죄악은 선천적으로 그리고 자동으로 자멸한다. 시공우주 비실체성에 해당하는 그런 태도가 우주에서 살아남을 있는 것은, 오직 올바르게 판결하는 우주 재판소의 응보를_결정하고 공평을_찾는 절차가 작동할 때까지, 일시적 자비와_아량을 베풀기 때문이다.
2:3.6 지방우주에서 창조주 아들 통치는, 창조하고 영성화시키는 통치다. 필사자가 점진적으로 상승하는 낙원 계획을 효과적으로 이행하기에, 그리고 반역자 그릇되게 생각하는 자들을 복귀시키기에 아들들이 전념하지만, 그런 모든 사랑하는 수고가 최종적으로 영원히 거부되면, 태고 항존자들의 관할권 아래서 집행하는 자들이 최종 소멸 명령을 집행한다.
 
 
4. 신성한 자비
 
2:4.1 자비는 다만, 유한한 피조물의 타고난 연약함과 환경의 불이익을 완전하게 알고 충분히 인식함으로써 생겨나는 지혜로 응보가 완화된 것이다. “우리 하나님 연민이 가득하고, 인자하고, 오래_참고, 자비가 풍부하시다.” 그러므로 부르는 자는 누구든지 구원을 얻을 것이니,” “그가 넉넉히 용서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 자비는 영원에서 영원까지 계속되는데”; 그렇다, “그의 자비는 영원히 지속된다.” “나는 세상에서 사랑스런_친절과 심판과 정의를 베푸는 이니, 내가 모든 것을 기뻐하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의 자녀를 고의로 괴롭히지 않고 슬프게 하지도 않는데,” 나는 “자비의 아버지이고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2:4.2 하나님 본래 친절하고, 당연히 인정 많고, 영원토록 자비로우시다. 그리고 그의 사랑스런_친절을 불러일으키려고 아버지 어떤 영향이든지 끼쳐야할 필요가 전혀 없다. 피조물의 필요만으로도, 아버지 섬세한 자비와 구원하는 은혜의 충분한 흐름을 보장하기에 전적으로 충분하다. 하나님 자녀에 관하여 전부 아시기 때문에, 하나님께는 용서하는 것이 쉬운 일이다. 사람이 이웃을 알수록, 이웃을 용서하는 , 그리고 심지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더욱 쉬워질 것이다.
 
2:4.3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어떤 주어진 우주 상황에서든지 응보와 자비를 동시에 베푸실 있는 것은, 오직 무한한 지혜의 분별력 때문이다. 하늘 아버지, 우주에 있는 자녀를 향한 상반된 입장으로 괴로워하는 일이 결코 없으며; 하나님 대립되는 태도로 피해를 입으시는 경우가 결코 없다. 하나님 전지{全知}하심이 그의 자유의지를 틀림없이 이끌어서, 그의 영원한 본성에 속하는 모든 신의 속성과 무한한 자질의 요구사항을 완전하게, 동시에, 그리고 동일하게 만족시키도록, 우주의 운영을 결정하신다.
2:4.4 자비는 선함과 사랑의 자연적이고 필연적인 산물이다. 우주 자녀들로 구성된 모든 집단의 구성원에게 베푸는 현명한 자비로운 섬김을, 사랑의 아버지 선한 본성 때문에 도저히 억제하실 없다. 인간의 체험에서 소위 공평함이라고 불릴 있는 어떤 것을, 영원한 응보와 신성한 자비가 함께 구성한다.
2:4.5 신의 자비는, 완전한 우주 수준과 불완전한 우주 수준 사이를 조절하는 공정한 기법을 보여준다. 자비는, 진화하는 유한자의 상황에 지존성 응보가 맞춰진 것이요, 시간세계에서 자녀의 최고 이익과 우주 복지를 만족시키도록 수정된 영원한 의로움이다. 자비는, 응보를 위반하는 것이 아니라, 하위{下位} 영적 존재들에게 그리고 진화하는 우주들에 속한 물질 피조물에게 공정하게 적용되듯이, 오히려 최상의 응보가 요구하는 사항에 대한 이해심 있는 해석이다. 자비는, 시간 및 공간  창조계의 다양한 지성체에게 현명하게 그리고 사랑함으로 적용했던 낙원 삼위일체 응보인데, 응보는 만유의 아버지 그의 모든 연합된 창조주들의 신성한 지혜로 조직되고, 전지{全知} 정신과 주권적 자유의지로 결정된다.
 
 
5. 하나님의 사랑
 
2:5.1 하나님 사랑이시다”; 그러므로 우주 업무에 대해 하나님 유일하게 친히 갖는 입장은, 항상 신성한 애정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아버지 자신의 생명을 우리에게 증여하실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신다. “그는 선한 자나 악한 자에게 해가 뜨게 하시고, 의로운 자나 불의한 자에게 비를 내리게 하신다.
2:5.2 아들 희생 제물로 삼음으로, 또는 하위 피조물이 탄원함으로 하나님 설득당해서 자녀를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인데, 아버지 자신이 너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이런 아버지로서의 애정에 반응하여, 하나님께서는 불가사의한 조율사 사람의 정신에 내주하도록 보내신다. 하나님 사랑은 보편적이며; “원하는 자는 누구든지 있다.” 그는 “진리를 앎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구원받게 하려하신다.” 그는 “누구든지 멸망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2:5.3 신의 법칙을 미련하게 위반함으로써 생기는 비참한 결과로부터 사람을 구하려고창조주들이 가장 먼저 시도한다. 하나님 사랑은 본성적으로 아버지다운 애정이며; 따라서 그는 때로 “그의 거룩함에 우리가 참여할 있게 하려고, 우리 자신의 유익을 위해 우리를 벌하신다.” 너희가 불같은 시련을 당하는 동안일지라도, “우리의 모든 고통 속에서, 그가 우리와 함께 고통 받고 계시다는 것”을 기억하라.
2:5.4 하나님 죄인에게 신성하게 친절하시다. 반역자들이 의로움으로 돌아오면, 이들을 자비롭게 받아들이는데, “우리 하나님 풍성하게 용서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자신을 위하여 너희의 죄악을 지워버리는 자이며, 너희의 죄를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보라, 우리가 하나님 아들이라고 불리게 되다니,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대단한 사랑을 베풀어 오셨는가.
2:5.5 결국, 하나님 선하심에 대한 가장 증거와 그를 사랑해야 되는 최고의 이유는, 아버지 내주하는 선물 때문이다-- 너희 존재가 영원히 하나 그때를 그토록 인내하면서 기다리는 조율사 때문이다. 너희가 찾는다고 해서 무조건 하나님 발견하게 되지는 않더라도, 내주하는 영의 인도를 너희가 따르고자 한다면, 걸음 걸음, 생애 생애, 우주에서 우주로, 그리고 시대 시대, 마침내 너희가 만유의 아버지 낙원 인격 현존 앞에 서게 때까지, 틀림없이 인도될 것이다.
2:5.6 인간 본성의 한계와 물질적으로 창조됨으로 인한 장애물 때문에 그를 보지 못하게 됐다고 해서 너희가 하나님 경배하지 않겠다함은, 얼마나 비합리적인가. 너희와 하나님 사이에는 횡단할 없는 굉장한 거리가( 물리적 공간이) 있다. 마찬가지로, 다리를 놓지 않으면 건너갈 수 없 엄청난 영적 격차의 간격이 있지만; 하나님 인격있는 낙원 현존에서 너희를 물리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떼어놓는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너희 안에 살고 계시다는 중대한 사실을 가만히 숙고해보라; 그는 자신의 방법으로 이미 간격에 다리를 놓으셨다. 너희가 영원한 우주 생애를 추구할 , 그는 너희 안에 살면서 너희와 함께 수고하시려고, 하나님 자신, 자기 영을 보내셨다.
2:5.7 그토록 위대하면서도 하급 피조물을 향상시켜주는 섬김에, 그토록 애정을 다해 헌신하시는 분을 경배하는 것이 쉽고도 기쁜 일임을, 나는 발견한다. 창조함에서 그리고 그것을 통제함에서 그토록 능력 있는 분을, 그리고 또한, 우리에게 변함없이 드리우는 사랑하는_친절함에서 그토록 신실하고, 선함에서 그토록 완전하신 분을, 나는 당연히 사랑한다. 그렇게 위대하지 않고 강력하지 않더라도, 하나님 선하고 자비로우신 , 나도 아마 하나님 똑같이 사랑하리라 생각한다. 우리 모두는, 아버지 놀라운 속성을 인정하기 때문이라기보다, 본성 때문에 아버지 사랑한다.
2:5.8 공간에서 우주의 진화에 내재된 시간세계의 다양한 어려움을 이기려고, 창조주 아들들과 하위 경영자들이 그토록 용맹스럽게 분투하는 것을 바라볼 , 비교적 작은 우주 통치자들에게 내가 어떤 크고 깊은 애정을 갖게 됨을 나는 발견한다. 결국 나는, 영역의 필사자를 포함해서 우리 모두가, 만유의 아버지는 물론, 신이든지 인간이든지 다른 모든 존재를 사랑한다고 생각하는데, 인격체들이 우리를 진실로 사랑한다는 것을 우리가 알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체험은, 사랑받는 체험에 대한 매우 직접적인 반응이다. 하나님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지존성궁극성과 절대성이라는 그의 전체 속성을 그에게서 벗겨내더라도, 나는 계속해서 그를 최상으로 사랑할 수밖에 없다.
2:5.9 아버지 사랑은, 현재와 영원한 시대들의 끝없는 궤도 도처에서 우리를 따라온다. 너희가 하나님 사랑하는 본성을 숙고할 , 사랑에 대한 인격자의 이성적이고 자연스런 반응은 가지 밖에 없다: 너희는 조물주 점점 사랑하게 것이며; 세상 부모에게 드리는 것과 유사한 애정을 하나님 드리게 것인데; 아버지, 실제 아버지이자 참된 아버지가 자녀를 사랑하듯이, 그렇게 만유의 아버지께서 사랑하시고, 창조된 아들과 딸들의 복지를 영원히 추구하시기 때문이다.
2:5.10 그러나 하나님 사랑은, 총명하고 선견지명 있는 부모다운 애정이다. 신성한 사랑은, 만유의 아버지 완전한 본성에 속하는 신성한 지혜 다른 모든 무한한 특질과 통일을 이룬 연합체에서 작용한다. 하나님 사랑이시지만, 사랑은 하나님 아니다. 필사 존재를 향한 신성한 사랑의 가장 현시{顯示}, 사고 조율사 증여하심에서 발견할 있으나, 아버지 사랑을 너희에게 가장 크게 계시한 것은, 그의 미가엘 아들 땅에서 이상적인 영적 생애를 살았을 그의 증여 생애에서 나타난다. 각각의 인간 혼에게 하나님 사랑을 개별화시키는 이는, 바로 내주하는 조율사.
 
2:5.11 하늘 아버지 우주 자녀들에게 베푸시는 신성한 애정을, 사랑이라는 인간 단어 상징을 채택하여 묘사할 수밖에 없을 , 나는 이따금씩 거의 고통스러울 정도다. 용어는, 비록 존경과 헌신이라는 필사자 관계에 대한 사람의 최고 개념이라 하더라도, 너무 많은 인간관계를 너무 자주 나타내기 때문에, 어떤 단어든지, 우주 피조물을 향한 살아계신 하나님 유례없는 애정을 가리키는 데에도 동일한 단어를 사용하기에는, 완전히 저급하고 전혀 맞지 않다! 낙원 아버지 신성한 애정의 참된 본성과 절묘하게 아름다운 의미를 인간 정신에게 알릴 있는, 어떤 숭고한 전용{專用} 단어를 내가 사용할 없음은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2:5.12 인격있는 하나님 사랑을 사람이 잊게 , 하나님 나라는 선한 왕국이 뿐이다. 신의 본성이 무한히 통일돼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하나님 피조물과 친히 나누는 모든 교제의 지배적인 특질이다.
 
 
6. 하나님의 선하심
 
2:6.1 우리가 물리적 우주에서 신성한 아름다움을 있고, 지적 세계에서 영원한 진리를 분별할 있지만, 하나님 선하심은 오직 개인의 종교 체험이라는 영적 세계에서만 발견된다. 종교는, 진정한 본질에서, 하나님 선하심을 믿는 신앙이자_신뢰다. 철학에서, 하나님 위대하고 절대적이며 심지어 지성적이고 인격적일 있지만, 종교에서 하나님 역시 도덕적이지 않을 없으며; 선하셔야한다. 사람은, 위대한 하나님 두려워하겠지만, 오직 선하신 하나님만을 신뢰하고 사랑한다. 하나님 선하심은 하나님 인격의 일부이며, 선하심에 대한 충만한 계시는, 믿는 하나님 아들들이 몸소 겪는 종교 체험에서만 나타난다.
2:6.2 종교는, {} 본성을 지닌 초월세계가 인간 세계의 근본적인 결핍을 인지하고 거기에 반응하는 것을 포함한다. 진화 종교는 윤리에 어울릴지 모르지만, 계시된 종교만이 참되게 영적으로 도덕적이 된다. 하나님 왕에 어울리는 도덕성의 지배를 받는 신격{神格}이라는 개념을, 예수 부모_자녀 관계에서 생기는 친밀한 가족 도덕성의 자애롭게 감동적인 수준으로 향상시켰는데, 필사자의 체험에서 이보다 부드럽고 아름다운 것은 없다.
2:6.3 하나님 풍부한 선하심이, 잘못을 범한 사람을 회개하도록 안내한다.” “모든 선한 은사{恩賜} 모든 완전한 은사는 빛의 아버지로부터 내려온다.” “하나님 선하시며; 사람의 혼의 영원한 피난처시다.” “ 하나님 자비롭고 인자하시다. 그는 오래_참고 선함과 진리가 풍부하시다.” “ 선하심을 맛보고 알라! 그를 신뢰하는 자는 복이 있다.” “ 인자하고 연민이 충만하시다. 그는 구원의 하나님이시다.” “상한 마음을 고치고 혼의 상처를 싸매신다. 그는 사람의 전능한 은인이시다.
 
2:6.4 하나님 왕이요_재판관이라는 개념은, 그것이 비록 높은 도덕 표준을 조성하고 집단으로서 법을_존중하는 민족을 세웠었더라도, 개별 신앙인이 시간세계와 영원세계에서 자기 신분을 확신할 없는 슬픈 처지에 놓이게 했다. 후기 히브리 선지자들은, 하나님 이스라엘에게 아버지 되심을 선언했으며; 예수, 하나님 인간 각자의 아버지이심을 계시했다. 예수 생애가 필사자의 하나님 개념 전체에 초월적으로 빛을 비췄다. 사심{私心}없음이 부모의 사랑에 내재돼있다. 하나님 아버지처럼 아니라 아버지로서 사랑하신다. 그는 모든 우주 인격체의 낙원 아버지시다.
 
2:6.5 하나님 우주의 도덕 법칙의 근원이심을, 정의{正義} 암시한다. 진리는 하나님 계시자로, 선생님으로 나타낸다. 그러나 사랑은 애정을 주고 또한 갈망하는데, 부모와 자녀 사이에 있는 같은 사려 깊은 친교를 추구한다. 정의는 신성한 사고{思考}이겠지만, 사랑은 아버지의 마음가짐이다. 하나님 정의가 하늘 아버지 사심 없는 사랑과 모순된다는 잘못된 추측이, 신격 본성에 통일성이 결여됐음을 전제했고, 속죄{贖罪} 교리라는 정교한 작품이 나오도록 직접 인도했는데, 이것은 하나님 통일성과 자유_의지성{意志性}, 다에 대한 철학적 공격이다.
2:6.6 애정 어린 하늘 아버지, 세상에서 자녀에게 내주하는 그의 영과 분리된--한편으로는 응보를 추구하면서 한편으로는 자비를 베푸는-- 인격체가 아니며, 뿐만 아니라 아버지 은혜 또는 용서를 보장하는 데는 중재인이 필요하지 않다. 신성한 정의는 엄격하게 처벌하는 응보에 지배받지 않으며; 아버지이신 하나님, 재판관이신 하나님 초월한다.
 
2:6.7 하나님 결코 진노하거나 복수하거나 화내지 않으신다. 그의 거부된 자비를 응보가 검사하는 동안, 지혜가 종종 그의 사랑을 억제하는 것이 사실이다. 정의를 사랑하심은, 죄를 한결같이 미워하심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아버지 변덕스런 인격체가 아니며; {} 통일성은 완전하다. 낙원 삼위일체 안에는, 하나님 동격인_존재들의 영원한 정체성에도 불구하고 절대 통일성이 있다.
2:6.8 하나님 죄인을 사랑하지만 죄는 미워하신다는: 그런 말은 철학적으로는 참이라도, 하나님 초월 인격체시며, 인격자만이 다른 인격자를 사랑하거나 미워할 있다. 죄는 인격자가 아니다. 하나님, 죄인이 (잠재적으로 영원한) 인격 실체이기 때문에 그를 사랑하는 반면, 죄는 영적 실체가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 죄에 대해 어떤 인격적 입장도 취하지 않으시며; 죄는 인격적이지 않으며; 따라서 오직 하나님 응보만이 죄의 실존을 인정한다. 하나님 사랑이 죄인을 구원하며; 하나님 법이 죄를 괴멸시킨다. 필사 정신이 자신에게 내주하는 조율사 온전히 편이 될지도 모르는 것과 똑같이, 바로 죄인이 최종적으로 충분하게 자신을 죄와 동일시하게 되면, 신성한 본성에 속하는 입장이 분명히 바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죄와_일치된 그런 필사자는, 사실상 완전히 {}영적 상태가 되고 (따라서 인격적으로 비실제가 되고), 존재의 최후 소멸을 체험할 것이다. 비실체는, 심지어 완결되지 않은 피조물 본성조차, 점차 실제적이고 점점 영적인 우주에서 영구히 존재할 없다.
2:6.9 인격의 세계와 대면할 , 하나님 사랑하는 인격자이심이 발견되며; 영적 세계와 대면할 인격있는 사랑이시며; 종교 체험에서는 다이시다. 사랑은 하나님 자발적 의지와 일치한다. 하나님 선하심은 신성한 자유_의지작용에-- 사랑하고, 자비를 보이고, 인내를 나타내고, 용서를 베푸는 보편적 경향에-- 기초를 둔다.
 
 
7. 신성한 진리와 아름다움
 
2:7.1 모든 유한한 지식과 피조물의 이해력은 상대적이다. 정보와 소식은, 높은 출처에서 얻었더라도, 상대적으로 완성되고 부분적으로 정확하고 개인적으로 참될 뿐이다.
2:7.2 물리적 사실은 상당히 일정하지만, 진리는 우주 철학에서 살아있고 융통성 있는 어떤 요소다. 진화하는 인격체들은 의사소통에서 부분적으로 현명하고 상대적으로 참될 뿐이다. 그들은 오직 개인 체험이 확장되는 한도까지만 확신할 있다. 장소에서 외견상 전적으로 참되게 보이는 것이, 다른 창조 구획에서는 오직 상대적으로 참될 수도 있다.
2:7.3 신성한 진리, 최종적인 진리는 불변이고 보편적이지만, 영적인 것들에 관한 이야기는, 다양한 세계에서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개인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때로는 세부사항에서 다를 있는데, 체험의 기간과 범위에서뿐 아니라 개인 체험의 충만함에서 그리고 지식의 완결에서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위대한 1 근원 중심 법칙과 , 생각과 입장은, 영원히, 무한하게, 그리고 보편적으로 참되며; 동시에, 우주와 체계와 세계와 창조된 지성체를 위한 조절 그리고 그것들에 대한 법칙과 , 생각과 입장을 적용하는 것은, 창조주 아들들이 각자의 우주에서 활동할 , 무한한 , 그리고 다른 모든 연합된 하늘 인격체의, 국지적{局地的} 계획과 과정에 조화를 이룰 뿐만 아니라, 그들의 계획과 기법에 일치한다.
 
2:7.4 유물론이라는 잘못된 과학은, 필사적 사람을 우주에서 버림받은 자가 되도록 판결할 것이다. 그런 부분적인 지식은 잠재적으로 악하며; 선과 , 다로 구성된 지식이다. 진리는 충만한 동시에 균형 잡혔기 때문에 아름답다. 진리를 탐색할 , 사람은 신성하게 실제적인 세계를 추구한다.
2:7.5 추상개념의 오류 속으로, 실체의 면에 관심을 집중하고, 그다음에는 그런 외골수적 견해를 전체적인 진리가 되도록 선언하는 풍습으로 잘못 인도될 , 철학자는 가장 심각한 실책을 범한다. 현명한 철학자는, 전체 우주 현상 뒤에 숨어있는, 그리고 그것보다 선재{先在}하는, 창조 설계도를 항상 찾으려고 것이다. 창조자의 사고{思考} 창조 행위보다 반드시 앞선다.
2:7.6 지성적 자아_의식은, 개념의 철학적 일관성뿐 아니라, 항상_현존하는 진리의 어김없이 반응함에 따라서, 진리의 아름다움, 진리의 영적 특질을 확실하고 분명하게 발견할 있다. 행복은 진리를 알아본 결과로 생기는데, 진리를 실행에 옮길 있고; 진리를 실천할 있기 때문이다. 실책에는 실망과 슬픔이 따라오며, 실책은 실체가 아니므로, 체험 속에서 실체가 없다. 신성한 진리는 영적 향기 가장 식별된다.
 
2:7.7 영원한 추구는 통합, 신과 일치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광범한 물리적 우주는 낙원 붙어있으며; 지적 우주는 정신의 하나님, 공동 행위자에게 붙어있으며; 영적 우주는 영원한 아들 인격에 붙어있다. 그러나 시간과 공간 속에서 고립된 필사자는, 내주하는 사고 조율사 만유의 아버지 사이의 직접 관계를 통해서 아버지 하나님 붙어있다. 사람의 조율사, 하나님 단편이고, 신과의 통합을 영원히 추구하며; 1 근원 중심 낙원신격, 그리고 안에 붙어있다.
 
2:7.8 최상의 아름다움을 식별함은 실체를 발견하고 종합하는 것이며: 영원한 진리 안에서 신의 선하심을 식별함, 그것이 궁극의 아름다움이다. 심지어 인간 예술의 매력도 조화를 이루는 통일성에 있다.
 
2:7.9 히브리 종교의 실수는, 과학의 사실적 진리와 예술의 매력적인 아름다움을, 하나님 선하심과 연합시키기에 실패한 것이었다. 문명이 진보되면서, 그리고 진리를 상대적으로 배제하고 아름다움을 무시하기까지 하나님 선하심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동일한 어리석은 행로를 종교가 계속 추구한 후에, 고립된 선이라는 추상적{抽象的}이고 단절된 개념을 어떤 유형의 사람들이 멀리하는 경향이 점점  커졌. 근대 종교의 과도하게 강압되고 고립된 도덕성은, 20_세기의 많은 사람의 헌신과 충성을 유지시키지 못하고 있는데, 만일 도덕적 명령에 덧붙여서, 과학과 철학과 영적 체험이라는 진리를 배려하고, 물리 창조계의 아름다움, 지적 예술의 매력, 그리고 진정한 성품 성취의 위엄을 똑같이 배려하고자 한다면, 도덕성은 저절로 회복될 것이다.
2:7.10 시대의 종교적 도전은, 영적 통찰력을 가진 선견지명 있고 앞을_내다보는 남녀를 향한 것인데, 시공우주 진리, 우주의 아름다움, 그리고 신의 선하심에 대한 확장되고 절묘하게 통합된 근대적 개념에서 살아나오는, 어떤 새롭고 매력적인 철학을, 남녀가 감히 구축할 것이다. 도덕성에 대한 그런 새롭고도 정의로운 선견{先見}, 인간의 속에서 가장 좋은 것에 도전하고, 사람의 정신 속에서 선한 모든 것을 끌어당길 것이다. 진리와 아름다움과 선함은 신성한 실체이며, 사람이 영적 삶의 단계를 올라감에 따라서, 영원자 이런 최상의 특성은 사랑이신 하나님 안에서 점점 조정되고 통일된다.
 
2:7.11 모든 --물질적, 철학적, 또는 영적-- 진리는 아름답고 선하다. 모든 실제 아름다움-- 물질적 기술 또는 영적 균형-- 참된 동시에 선하다. 모든 진정한 선함도 --개인적 도덕성, 사회적 공평성, 신성한 섬김 가운데 어느 쪽이든지-- 똑같이 참되고 아름답다. 건강온전한 정신과 행복은, 진리와 아름다움과 선함이 인간의 체험 속에서 어우러질 , 가지가 통합된 것이다. 능률적인 삶의 그런 수준은, 에너지 체계와 관념 체계 그리고 체계의 통합을 통해서 발생한다.
2:7.12 진리는 일관적이고, 아름다움은 매력적이고, 선함은 안정적이다. 실재하는 것의 가치가 인격체의 체험에서 조정될 , 결과는 지혜로 조절되고 충성으로 자격을 갖춘, 높은 등급의 사랑이다. 모든 우주 교육의 진정한 목적은, 세계에서 고립된 자녀가, 자신의 확장하는 체험이라는 실체들과 나은 협조를 이루도록 하는 것이다. 실체는 인간 수준에서는 유한하고, 높고 신성한 수준에서는 무한하고 영원하다.
 

 

2:7.13 [우버사에서 태고 항존자들의 권한으로 활동하는, 신성한 조언자 제시했음]


 제1편 만유의 아버지 ∥ 제3편 하나님의 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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