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과 유란시아서
성경과 유란시아서의 관계에 대한 입장이 정리되지 못하면 상당한 혼란이 야기될 수 있으며,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고 볼 수도 있다. 성경은 수천 년 동안 유대인이라는 한 민족과 이스라엘이라는 한 나라와 관련된 역사적 및 신앙고백적 기록이며 많은 다양한 문화적 소산물들과 양식들이 망라되어 있다. 또한 계시와 관련된 또는 계시에 의한 부분들도 많이 포함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에 비하여 유란시아서는 불과 수 년 만에 특별한 방법에 의해 계시로 주어졌고 기록되었다.
이 두 문서들 간의 관계를 여러 각도와 방법으로 설명할 수 있겠으나, 어떤 설계도면과 건물을 예로 들어 생각해 보았다.
어떤 훌륭한 설계사가 역사에 남을만한 획기적으로 훌륭한 큰 도시를 건설할 꿈을 가지고 자신의 모든 역량과 노력과 시간을 동원하여 완전한 설계도를 완성하였다 치자. 그것은 너무나도 방대하고 완전하기 때문에, 너무나도 전문적인 용어들과 표시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3차원적인 것이 아니라 2차원적인 것이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이 그 설계도를 본다면 아마 잘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도대체 그 설계도가 어떤 모습으로 형태화 되어 나타날 것인지 감을 잡기가 힘들 것이다. 그러나, 그 설계자가 설계도면에 아주 충실하게, 천 분의 일 축소판으로 모형을 직접 만들어 일반 사람들에게 전시한다면, 문제는 전혀 달라질 것이다. 물론, 그 모형은 사람이 들어가 살 수 있는 진짜 도시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건축이나 도시설계에 문외한의 사람이라도, 모형을 보면 그 복잡하던 그리고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었던 설계도가 어떻게 형태화되어 나타나게 될 것인지를 상당히 정확하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설계자 자신도 모형을 만들어봄으로써 미진하였던 설계도 부분들을 더 효율적인 모습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설계자가 아닌 모든 일반인들에게는, 설계도도 중요하지만 설계도를 바탕으로 한 모형을 보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라고, 현실적으로 볼 때에는 오히려 더 중요한 볼 수 있는 것이다.
성경을 그 모형에, 유란시아서를 설계도에 비유해 보자. 우주의 설계자이신 하나님께는 완전한 설계도가 있다. 그 설계도는 영원성과 무한성 그리고 완전성 속에서 성취되어갈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 우주를 자신의 자녀들에게 유업으로 주시고자 하신다. 그러므로 그 우주를 유업으로 받게 될 자녀들에게 설명해 주셔야 한다. 그러나 인간이 너무나 미약하고 무지한고로, 설계도를 직접 보여주어서는 도저히 이해시킬 수 없는 것이다. 아마 그 설계도를 멀리서 바라보면서 머리를 흔들며 다 도망가 버리지 않을까?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하나의 모형을 보여주시기 위해 어느 민족과 나라를 택하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모든 민족과 나라들에게 기회를 주셨겠지만, 그 부르심에 응답한 민족과 나라가 바로 유대인과 이스라엘 나라였다. 그리고 그들과의 관계 속에서 그 모형을 완성하셨고, 그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들이 읽고 있는 성경이다. 그리고 시대가 흘러, 모형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세대, 설계도 자체를 보여주시기를 고대하는 자녀들, 그리고 이제는 그 설계도를 일부 보여주어도 나름대로 상당히 이해할 만큼 발전되었다 인정하실만한 준비가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특별한 방법으로 그 설계도의 일부분을 드러내신 것이며 그것이 바로 유란시아서이다.
그러면, 성경과 유란시아서 둘 중에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가? 성경과 유란시아서 둘을 비교하여 어느 것이 더 낫고 어느 것이 부적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어느 한 쪽에 더 흥미를 가진다고 해서 그 사람을 상대방이 비난할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결코 아닐 것이다! 성경과 유란시아서는, 마치 설계도와 모형처럼 둘 다 중요하고 둘 다 필요하다. 우리 인간이 여전히 너무나도 부족하고 미욱하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모형을 보면서 설계도를 마음 속에 그려볼 수도 있을 것이고, 모형을 통하여 설계도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설계도를 먼저 보면서 그 형태화를 마음에 그려볼 수 있을 것이고, 감 잡기 힘들 때에는 이미 보여진 모형을 보면서 더 빨리 그리고 더 쉽게 이해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선택은 선택하는 인간 각자에게 달려있는 문제이다. 그의 마음 자세와 역량에 따라 소신껏 선택하면 될 일이다. 더 중요한 것은, 설계도 자체도 아니요, 모형도 아니요, 실제 설계도대로 형태화 되어가고 있는 그 도시 안에 들어가서 설계도의 목적대로 행복하게 살아가는 삶 그 자체인 것이다. 성경과 유란시아서를 하나님 나라 이해를 위한 상호보완적인 도구로 본다면 도대체 무엇이 문제가 된다는 말인가?(K)
성경과 유란시아서의 관계에 대한 입장이 정리되지 못하면 상당한 혼란이 야기될 수 있으며,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고 볼 수도 있다. 성경은 수천 년 동안 유대인이라는 한 민족과 이스라엘이라는 한 나라와 관련된 역사적 및 신앙고백적 기록이며 많은 다양한 문화적 소산물들과 양식들이 망라되어 있다. 또한 계시와 관련된 또는 계시에 의한 부분들도 많이 포함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에 비하여 유란시아서는 불과 수 년 만에 특별한 방법에 의해 계시로 주어졌고 기록되었다.
이 두 문서들 간의 관계를 여러 각도와 방법으로 설명할 수 있겠으나, 어떤 설계도면과 건물을 예로 들어 생각해 보았다.
어떤 훌륭한 설계사가 역사에 남을만한 획기적으로 훌륭한 큰 도시를 건설할 꿈을 가지고 자신의 모든 역량과 노력과 시간을 동원하여 완전한 설계도를 완성하였다 치자. 그것은 너무나도 방대하고 완전하기 때문에, 너무나도 전문적인 용어들과 표시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3차원적인 것이 아니라 2차원적인 것이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이 그 설계도를 본다면 아마 잘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도대체 그 설계도가 어떤 모습으로 형태화 되어 나타날 것인지 감을 잡기가 힘들 것이다. 그러나, 그 설계자가 설계도면에 아주 충실하게, 천 분의 일 축소판으로 모형을 직접 만들어 일반 사람들에게 전시한다면, 문제는 전혀 달라질 것이다. 물론, 그 모형은 사람이 들어가 살 수 있는 진짜 도시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건축이나 도시설계에 문외한의 사람이라도, 모형을 보면 그 복잡하던 그리고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었던 설계도가 어떻게 형태화되어 나타나게 될 것인지를 상당히 정확하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설계자 자신도 모형을 만들어봄으로써 미진하였던 설계도 부분들을 더 효율적인 모습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설계자가 아닌 모든 일반인들에게는, 설계도도 중요하지만 설계도를 바탕으로 한 모형을 보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라고, 현실적으로 볼 때에는 오히려 더 중요한 볼 수 있는 것이다.
성경을 그 모형에, 유란시아서를 설계도에 비유해 보자. 우주의 설계자이신 하나님께는 완전한 설계도가 있다. 그 설계도는 영원성과 무한성 그리고 완전성 속에서 성취되어갈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 우주를 자신의 자녀들에게 유업으로 주시고자 하신다. 그러므로 그 우주를 유업으로 받게 될 자녀들에게 설명해 주셔야 한다. 그러나 인간이 너무나 미약하고 무지한고로, 설계도를 직접 보여주어서는 도저히 이해시킬 수 없는 것이다. 아마 그 설계도를 멀리서 바라보면서 머리를 흔들며 다 도망가 버리지 않을까?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하나의 모형을 보여주시기 위해 어느 민족과 나라를 택하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모든 민족과 나라들에게 기회를 주셨겠지만, 그 부르심에 응답한 민족과 나라가 바로 유대인과 이스라엘 나라였다. 그리고 그들과의 관계 속에서 그 모형을 완성하셨고, 그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들이 읽고 있는 성경이다. 그리고 시대가 흘러, 모형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세대, 설계도 자체를 보여주시기를 고대하는 자녀들, 그리고 이제는 그 설계도를 일부 보여주어도 나름대로 상당히 이해할 만큼 발전되었다 인정하실만한 준비가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특별한 방법으로 그 설계도의 일부분을 드러내신 것이며 그것이 바로 유란시아서이다.
그러면, 성경과 유란시아서 둘 중에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가? 성경과 유란시아서 둘을 비교하여 어느 것이 더 낫고 어느 것이 부적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어느 한 쪽에 더 흥미를 가진다고 해서 그 사람을 상대방이 비난할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결코 아닐 것이다! 성경과 유란시아서는, 마치 설계도와 모형처럼 둘 다 중요하고 둘 다 필요하다. 우리 인간이 여전히 너무나도 부족하고 미욱하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모형을 보면서 설계도를 마음 속에 그려볼 수도 있을 것이고, 모형을 통하여 설계도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설계도를 먼저 보면서 그 형태화를 마음에 그려볼 수 있을 것이고, 감 잡기 힘들 때에는 이미 보여진 모형을 보면서 더 빨리 그리고 더 쉽게 이해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선택은 선택하는 인간 각자에게 달려있는 문제이다. 그의 마음 자세와 역량에 따라 소신껏 선택하면 될 일이다. 더 중요한 것은, 설계도 자체도 아니요, 모형도 아니요, 실제 설계도대로 형태화 되어가고 있는 그 도시 안에 들어가서 설계도의 목적대로 행복하게 살아가는 삶 그 자체인 것이다. 성경과 유란시아서를 하나님 나라 이해를 위한 상호보완적인 도구로 본다면 도대체 무엇이 문제가 된다는 말인가?(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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