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April 21, 2011

두 번 드러나는 인생

동물은 태어날 때부터 그 됨됨이가 거의 다 정해져 있다. '길들이기'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거기에도 많은 한계가 있다. 호랑이는 태어날 때부터 호랑이로서의 됨됨이를 가지고 태어나며 죽을 때까지도 별로 변함없이 그 됨됨이의 틀 속에서 살다가 죽는다.

사람도 태어날 때부터 인간으로서의 됨됨이가 상당히 정해진 것처럼 보인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우리말 속담이 그러한 점을 잘 표현해 준다. 육신의 생명을 이어준 부모의 성품을 이어받기 때문에, 환경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그 모습이 상당히 영향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아마도 그래서 옛 조상들은 자녀들을 결혼시킬 때 결혼 당사자들의 감정이나 뜻보다 그 집안의 전통이나 분위기를 더 중요시 여겼던 것 같다. 어렸을 때에는 "고리타분한" 어른들의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하며 우습게 여기기도 하였지만, 인생을 살아가다 보니 그것이야말로 오랜 세월 속에서 만들어지고 이어지는 어떤 '지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된다. 어떤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천방지축이다. 어느 부모가 그렇게 되라고 자녀를 가르치겠는가? 그런데도 그 아이는 태어나면서부터 부모의 애간장을 태우는 모습을 보여준다. 또 어떤 아이는 어려서부터 소위 '애늙은이'의 모습을 나타낸다. 가르쳐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생각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이 상당히 어른스러운 아이들이 있다. 어린 아이들은 어떤 의도나 목적으로 가지고 자신을 꾸미지 못하기 때문에 이러한 인간 됨됨이가 마치 깨끗한 연못을 들여다보듯이 사람들 눈에 쉽게 잘 드러난다. 조금 지나면 다 감추어지기 시작하지만...

그러나 사람이 동물과 완전히 다른 것은, 사람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그 됨됨이가 상당히 많이 바뀔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어떤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가, 어떤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 가는가, 어떤 지식과 지혜를 갖게 되는가, 어떤 직업을 갖는가, 그리고 오늘날의 상황으로 보면 어떤 정보를 갖고 있는가에 따라 그 사람의 인간적인 됨됨이 역시 타고난 어떤 성품이나 상태로부터 상당히 많이 변화되어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시간이 흐른 뒤에 어른이 되어 옛 친구들을 만나면, 과거의 모습들이 여전히 남아있기는 하지만, 그의 걸어온 인생길에 따라 상당히 많이 변화된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렇게 변화되는 데에는 크게 두 가지 원인이 있을 것이다. 하나는, 세상을 살아가기 위하여, 소위 성공적인 인생을 살기 위하여 자기 본 모습을 감추고 여러 가지 가면을 씀으로 인하여 그렇게 사람들에게 비추어질 수 있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정말로 그의 인간 됨됨이가 그렇게 변화되어서 그런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경우이다.

사람은 잠깐 살다가 이 세상에서 다 사라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여기에는 예외가 없다. 나이가 들어 노환으로 죽든지 아니면 질병이나 사고에 의해 명을 다하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다. 그런데 갑작스런 죽음을 당하지 않는 경우에, 노환이나 질병으로 인하여 어떨 수 없이 죽음을 눈앞에 두는 경우 또는 육신의 힘이 떨어지는 경우에, 앞에서 말한 두 가지 경우가 극명하게 다른 모습을 보이게 된다. 가면을 씀으로 인하여 어떤 꾸며진 됨됨이를 보이던 사람은, 자신을 통제하는 능력을 잃게 될 때, 숨겨졌던 본 모습을 서서히 드러낸다는 것이다. 건강할 때에는 굉장히 신사적이고 자애로우며 친근함으로 보여주던 사람이 건강을 잃거나 죽음을 눈앞에 두게 되면 그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이기적이고 고집스러우며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는 고약한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가 있다. 이런 사람은 어렸을 적부터 갖고 있던 인간 됨됨이가 어른이 되어서도 실제적으로는 변화되지 못하고 오직 가면을 씀으로 인하여 그렇게 보여졌던 것 뿐이다. 감추어졌던 본성이, 마치 물 속 밑바닥에 묻혀 있던 쓰레기가 홍수로 인하여 물 위로 떠오르는 것처럼, 그렇게 갑자기 통제되지 못하고 사람들 앞에 드러나는 것이다. 신앙인들 경우에도 예외는 아니다. 힘이 있을 때에는 신앙이 좋은 모습으로 잘 포장을 하였지만, 힘을 잃게 되면, 본의 아니게 자신의 밑바닥에 감추어졌던 그 됨됨이들이 적나라하게 겉으로 드러내서, 저 사람이 과연 믿음 있는 사람인지 의심이 갈 정도의 말과 행동을 하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심각한 문제는, 자신에 대한 통제력을 잃어버리지 않을 것을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점이다. 그 날은 갑자기 찾아온다. 원하지 않아도 그 날은 반드시 다가오게 되어 있다. 그렇다면 어찌할 것인가? 두 번째로 자신의 인간 됨됨이가 밝히 드러나는 그 날을 맞이하게 될 때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존경받고 인정받던 그 모습들이 다 사라지고, 내가 젊을 시절에 그토록 우습게 여겼던 소위 '주책없는 노인'의 모습을 나도 똑같이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말 것인가?

해답이 있다. 결코 쉽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가능한 것은 아닌 해결책이다. 그것은 바로, '나의 됨됨이가 그렇게 되게 하는 것'이다. 가면을 쓰는 것이 아니라, 허언으로 적당히 넘기거나 모면하는 그런 인생이 아니라, 진심으로 내가 그렇게 변화되어가는 어떤 인간이 되어가는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걱정할 것이 무엇인가? 오히려 힘이 없어 속 사람이 드러날 때, 그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이 되겠는가? 사람들이 "곱게 늙으셨다"고 칭찬하며 존경의 눈초리로 바라보아 줄 때 그 기쁨과 보람은 무엇과도 바꾸지 못할 큰 감동이 되지 않겠는가? "될성부른 떡잎"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남들이 별로 알아주지 않는 주변머리 없는 인생을 살았다 하더라도, 나의 속 저 밑바닥에 자리 잡고 있는 진정한 '나의 인간 됨됨이'가 하나님 아버지 보시기에, 신앙의 형제들이 보기에 그리고 이웃의 눈에 아름다운 모습이 될 수만 있다면, 나의 인생은 정말로 성공한 인생이었지 않겠는가. 두 번째 드러날 그 날, 하루 하루 어김없이 다가오고 있는 그 날을 바라보면서 간절한 소망을 되뇌어 본다. "두 번째 드러날 그 날에 아름다운 나의 모습이 되고 싶습니다. 그렇게 되도록 도와주시옵소서!"(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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