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October 30, 2023

빛을 받기까지 나의 여정 - 3. 하나님의 섭리

어느날 미국에서 편지가 왔다. 나를 약혼자로 초청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알아보니, 이 초청에 응하려면 한국에서 완전히 미국으로 이민가는 수속을 밟아야 하고, 미국에 입국한 지 3개월 내에 혼인신고를 하지 않으면 한국으로 돌아오든지, 아니면 불법체류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미국에 가려는 내 마음이 워낙 확고했기에, 걱정하시는 부모님의 말씀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일이 어찌될지 모르니 퇴직하지 말고 잠시 휴직하는 것으로 해서 다녀오라는 연구원 소장님 권면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모든 것을 정리한 후 1985년 3월에 촌놈이 처음 비행기를 타고 미국에 도착했다. 누님 식구들과의 반가운 만남도 잠시였고, 결혼에 퇴짜맞은 나는 졸지에 불법체류자가 되었다. 너무 마음아파하면서 걱정하시는 아버님을 누님이 초청하여 잠시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불법체류자가 된 아들, 결혼도 어그러진 이 막내아들을 이역만리 미국 땅에 떼어놓고 떠나시던, 차마 눈물을 보이기 싫어서 고개를 돌리며 공항에서 뒤도 돌아보지 못하고 걸어가시던 아버지, 그리고 국민학교 4학년 어린 나이의 막내아들을 서울로 유학보내고 나서 세 달 동안 밤마다 눈물을 흘리셨다는 어머니, 두 분께는 정말로 고개를 들지 못할 불효자가 돼버렸다.

그때 겪던 마음의 고통과 불확실한 미래의 압박감은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연구소에서 일하던 컴퓨터 관련 일이 아니면 아무 것도 하지 않겠다면서 8개월 동안 누님들께 신세지다가, 그해 12월 말경에 한인 교포가 원영하는 컴퓨터 회사에 취직이 됐고,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한 컨설팅 업무를 익히게 왰다. 1년을 채우지 못하고 퇴사하게 됐는데, 미국에서 불법 체류자는 월급을 받는 직원은 될 수 없어도 월급을 주는 회사 주인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내 컨설팅 회사를 설립하여 일하게 됐다. 몇 달간 밤낮으로 작업하여 직접 설계하고 개발한 어카운팅 프로그램으로 도매상들을 대상으로 컨설팅을 시작했다.

부흥집회 등에서 은혜를 받기도 했고 교회활동에도 적극 참여하는 등 나름대로 열심을 냈지만 성경을 읽는 데는 어려움이 있었다. 새해가 될 때마다 결심을 하고 성경읽기표를 작성해 놓고 진도를 따라가려고 애쓰기도 했으나, 솔직히 말해서 재미가 없었다. 한 페이지만 넘겨도 앞에 있는 내용이 생각나지 않고,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많아서, 조금 읽다보면 졸음이 몰려와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기차를 타고 출근하면서 성경을 펼쳐놓아 보지만, 종착역이 되어 잠에서 깨면 그저 몇 줄 읽다가 잠들었기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날 밤에 여러 성도들이 합심으로 기도하는 중에 성령을 받는 체험을 해게 됐다. 남들은 성령 받았다고 하면서 울고불고 하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오히려 기쁨이 넘쳤고, 기도할 때 혀가 제멋대로 빠져나와 요동치는 체험도 했다. 내 정신이 이상해졌나 염려되어 홀로 화장실에 들어가 시험해 보기도 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출근을 하면서 하늘을 보니 나뭇잎들이 바람에 흔들거리면서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아름답던지! 매일 보던 장면인데 완전히 달라보였다. 하나님의 창조가 경이롭게 느껴졌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기차를 타고 출근하면서 성경을 펼쳤는데 재미가 있었다. 그저 이해가 됐다. 다음 페이지에 무엇이 씌었을지 궁금하여 책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더 읽고싶은데 벌써 종착역에 와 있었다. 나의 교회생활은 이때부터 완전히 달라졌다. 

1986년 겨울 성탄절 날 저녁, 기분전환 할 겸 맨하탄 거리를 둘러보자는 작은 누님과 매형의 제안에, 별로 내키지는 않았으나 마지못해 따라나섰다. 한인 상가들이 밀집돼 있는 브로드웨이 32가 건널목을 건너가게 됐다. 그런데 건널목 중간쯤 걷고 있을 때 작은 누님이 갑자기 소리쳤다. "아니 이게 누구야!" 그 처자와 건널목 한가운데서 마주쳤던 것이다. 나는 피하고 싶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누님이 강요하다시피 하여 근처에 있는 내 사무실로 갔고, 이렇게 그 처자와의 만남이 다시 시작됐고, 결국 이듬해 봄에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고, 그 처자는 나의 아내로서 최고의 후원자가 되었다.

컨설팅 사업은 개인 컴퓨터에서 미니 컴퓨터까지 업그레이드 하면서 여러 직원과 함께 상당히 발전하기도 했으나, 나는 사업보다 교회생활에 점점 더 깊이 빠져들었다. 전도폭발 훈련과 제자훈련 등을 거치고, 또래 선교회 성경교사 역할을 하면서 성경에 푹 빠져서 지냈다. 그러던 어느날부터 성경에 대한 질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하나님의 아들과 사람의 딸이 짝을 맺었다는데, 하나님의 아들은 무엇이고 사람의 딸은 무엇인가? 가인이 아벨을 죽이고 쫓겨날 때 사람들이 자기를 죽일까 두렵다고 하는데 그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기 전에 이 잔이 옮겨질 수만 있으면 옮겨달라고 기도하셨는데 인간적으로 두려워서 죽음을 피하려고 그렇게 기도했다면, 자신이 죽을 것이라고 제자들에게 여러 번 이야기한 후에 죽기 싫다고 기도했다면 그것은 제자들을 우롱하는 태도가 아닌가? 등등. 기회 있을 때마다 여기 저기 물어봤지만 시원한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그래서 기도하기 시작했다.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습니다. 성경에 대해 이해하고 싶은데, 하나님께서 직접 알려주시면 안 될까요?" 얼마 지나지 않아서 어떤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성경에서 찾아보니, 다만 찾지 못했을 뿐 내가 알고 싶은 대답이 거기에 있었다. 그때의 감격과 기쁨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였다. 나는 더 알고 싶었다. 멜기세덱은 누구인가? 아브라함이 만났던 천사들은 어떤 존재인가? 하나님은 어디에 계신가? 인간은 언제부터 영적인 존재가 되는가? 더 깊이 알고 싶어서 신학교 문을 두드렸고, 학우들 가운데 이원명 씨를 만나게 됐고, 유란시아 책에 대해 듣게 됐고, 번역하게 됐고, 내 나름대로 대답을 찾았던 것들과,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궁금증들에 대한 해답을 '유란시아 서'에서 발견했다. 지나온 인생에서 겪었던 마음의 고통과 육신의 고난들은 결국 '유란시아 서'를 만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여러 디딤돌이었음을 이제서야 깨닫는다.

그러면 나의 이 여정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최근에 갑자기 기억난 것이 있다. 대학 1학년을 마칠 무렵 집으로 가려고 버스에 앉아 우두커니 학교 정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거대한 조형물 꼭대기에 "Veritas Lux Mea"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진리가 나를 밝혀준다." 그러나 나의 대학생활 1년은 그저 허겁지겁 학점 따느라 바빴을 뿐 진리의 진짜에도 접근해보지 못했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정말로 진리를 만날 수 있다면, 어떤 값을 치르더라도, 내 인생을 전부 바친다해도 아깝지 않겠다." 그때 그 생각을 하나님께서 아시고, 그 수많은 갈림길을 지날 때마다 나를 이끌어 여기까지 오게 하신 것인가? 아니, 국민하교 4학년 어린 나이에 "나도 서울 가서 형 누나들과 함께 공부하고 싶다"고 했을 때, "네가 무슨 돈으로 서울 가서 공부하겠느냐?"고 부모님이 웃으시니, 옆에 있는 항아리를 가리키면서 "저 항아리를 팔아서 가겠다"고 했을 때 하나님께서 나를 보시고 어떤 가능성을 보신 결과인가? 아니, 만으로 다섯 살 무렵 아직 학교에 들어가지 않았을 때 논둑 길을 뛰어가면서 내가 나 자신에게 말을 걸고 주거니 받거니 했던 신비롭게 느껴졌던 바로 그 순간에 이미 내 속에서 역사를 시작하신 것은 아닌가?

아무튼, 나는'유란시아 서'를 만나 생명의 빛을 받았고, 진리로 말미암아 자유케 되는, 최고의 행복을 누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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