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출발은 1994년 12월 초에 시작됐다. 신학교 학우들 가운데 한 분인 이원명씨와 함께 가을학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중, "LA에서 수년 전에 만난 친구로부터 "우란티아(유란시아 서)라는 팜플렛을 하나 받은 적이 있는데, 범상치 않은 내용인 것 같다. 이번 겨울방학 동안 어떤 책인지 함께 검토해 보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들었다. 간략하게 소개받은 내용에 나도 귀가 솔깃하여 그자리에서 동의하고, 다음날 Barns & Noble 책방에가서 한 권을 구입했다. 아주 얇은 종이에 빽빽히 인쇄된 2천 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이었다.
우리는 매주 한 번씩 만나서 의견을 교환하기로 했다. 내가 먼저 읽고, 그 내용을 토대로 거의 두 시간 가까이 대화를 나누면서, 소위 이단을 퍼뜨리는 이상한 책이 아닌지, 교묘하게 지식을 전파함으로 사람을 미혹하는 영지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서적은 아닌지, 대단히 비판적인 시각으로 검토하기 시작했다. 상당히 난해한 부분들이 많았지만, 뼈대가 될만한 내용은 빼놓지 않고 토의했다. 그리고 이렇다할 오류는 발견할 수 없었고, 호기심은 점점 깊어졌다. 이렇게 매주 만남을 계속하면서 겨울 방학을 보내던 어느날, 이원명씨가 반가운 소식을 가져왔다. "한국 신문에서 우연히 발견했는데, 유란시아 서 한국인 모임에 관한 광고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체하지 않고 바로 연락하여 그 모임에 참여했다. 그 모임에는 Urantia Fellowship의 Mr. & Mrs. Clark, 그리고 이원명씨와 내가 전부였다. 네 사람의 반가운 교제가 시작됐다. 우리는 그동안 궁금해하던 것들에 대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고, 유란시아 서에 대한 신뢰와 확신은 더욱 깊어졌다.
그러던 1995년 겨울 어느날, 나의 운명을 바꿔놓은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Mrs. Clark이었고, "유란시아 서를 한국 말로 번역해 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나는 기쁘게 받아들였고, 그 긴 여정은 곧바로 시작됐다. 책의 내용을 전체적으로 깊게 이해하고 싶던 나에게 그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었다. 당시에는 한글로 번역된 책이 전혀 없었고, Foundation에서 어떤 한국 사람이 번역하고 있다는 어렴풋한 정보만 갖고 있었다. Fellowship의 New York Society에서 지원받아 이미 약간 진행된 상태였는데, 나는 4부 157편부터 번역하기 시작했다. 4부를 마친 뒤에는 120편부터 156편까지 번역된 기존 파일을 받아서 수정작업을 거쳐 4부를 완성했고, 1부에서 번역된 처음 몇 편(4편 또는 5편까지)을 이어서 3부까지 번역했고, 2000년 4월 6일에 1차 번역작업을 완료했다.
당시에는 인터넷은 고사하고 개인 컴퓨터조차 일반에게 널리 보급되지 않은 상태였으므로, 내 집에 있는 데스크탑 컴퓨터와 브라운관 모니터 앞에서, 한쪽에는 유란시아 서 영어 원본을 놓고, 다른 쪽에는 영한사전을 펴놓고, 한 문장씩 번역하여 아래한글 워드프로세서를 이용해 컴퓨터에 입력하는 식이었다. 때로는 문장이 난해하여 이해되지 않은 상태에서 번역할 수밖에 없었고, 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단어들로 인하여 난감한 경우가 허다했다. Mr. Clark에게 영어 원문의 의미에 대해서는 질문할 수 있었지만, 어떤 한글 단어로 번역해야할지 난감할 때가 많았고, 하소연할 데도 없이 매일 영어 단어와 씨름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돌이켜봐도, 어떻게 그 일을 할 수 있었는지 나 자신이 신기하게 생각되기도 한다.
한국에서 월드컵이 열리던 2002년 7월에, Fellowship 주관으로 4년마다 열리는 국제 대회가 아리조나 주 Flagstaff에서 열렸다. 두 달 전인 5월 무렵에 Mr. Clark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이번 국제대회에서 한글 번역본 완성에 대해 발표를 해달라"는 요지였다. Mr. Clark의 도움을 받아 20분 가량의 영어 원고를 준비했다. 참가자 전원이 모이는 아침 집회 가운데 하나에서 main speaker로서 발표했다. 신통치 않은 영어발음에도 모두 경청해 줬고, 발표가 끝나자 전부 일어나 박수를 치면서 환호했다. 정말로 감격스런 장면이었다. 이때 한국에서 참여한 장시영씨를 만났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상당히 많은 미국 지식인들은 오래전부터 한국이 장차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리라 기대하고 한국어 번역에 공을 들이면서 많은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런 마음이 그날의 환호성으로 표현됐던 것이다. 한글 번역본 완성을 계기로 러시아어와 스패니쉬어 등 여러 언어로 번역이 진행됐고, 많은 결실이 이뤄졌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유란시아 서 번역 작업은 나에게 "불가능에 대한 도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끝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얻고 싶은 열망 때문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교회 생활과 성경에서 발견한 의문점들은 유란시아 서를 만나기 위한 가장 확실한 디딤돌이었음에 틀림 없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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